답이 없어서가 아니다. 답이 너무 많아서다. 마치 먼지 쌓인 헌책처럼, 조금만 넘겨도 과거가 펄펄 흩날려 내려와 어느 페이지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늘 인연에 맡긴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믿지 않는다.
모든 게 효율을 중시하는 이 시대에 '인연에 맡긴다'는 말은 대충 둘러대는 말처럼, 도피처럼, 또 겁쟁이가 체면치레하는 핑계처럼 들린다. 하지만 나는 감정을 기대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저 외로움을 벗어나려고 급하게 관계를 시작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나는 늘 생각한다. 사랑은 빈자리를 채우는 비상등이 아니라, 긴 밤을 지나는 동안 저절로 켜지는 등불이어야 한다고. 눈부실 필요도, 거창할 필요도 없다. 그냥 서로의 진짜 모습과, 쉽게 꺼내지 못하는 속마음까지 비춰줄 만큼 따뜻하면 된다.
어떤 이들은 내가 너무 이상주의적이라며, 사랑을 지나치게 신성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완벽한 사람을 바란 적이 없다. 그저 진실된 이해를 얻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반복해서 듣는 그 노래가 단지 멜로디가 좋아서가 아니라, 몇 년 전 어느 여름날 비 속에서 들었던 곡이란 걸. 또 누군가가 궁금해해 줬으면 좋겠다. 내가 왜 항상 같은 색 펜으로 글을 쓰는지, 책장의 세 번째 칸을 왜 항상 비워두는지, 바다를 볼 때마다 왜 갑자기 말문을 닫는지.
이런 사소한 것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온전한 나를 이루는 조각들이다.
나는 사귀기 어려운 사람이 아니다. 다만 너무 자세히 기억하고, 너무 오래 기억할 뿐이다.
내 마음은 온통 메모로 가득한 헌책과 같다. 누군가가 표지만 훑어보고선 '그런 이야기는 이미 봤다'고 단정 짓지 않고, 천천히 읽어 내려가길 기다리는 사람이 필요하다.
과거에 남은 상처도 분명히 아직 있다. 피부 깊숙이 박힌 가시처럼, 평소에는 소리 없이 있다가 어느 비 오는 날이면 은근히 욱신거린다. 누군가 나를 구원해주길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이 상처를 봤을 때, 짜증 내며 왜 시원하게 못 넘기냐고 묻지만 않아주길 바란다.
나는 때때로 시원하게 사랑하고 깔끔하게 떠나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내 연애관은 손편지만큼 올드하다. 편지지를 펼치고, 잉크를 제대로 찍어 한 문장 한 문장을 여러 번 곱씹는다. 보낸 후에는 마음 졸이며 기대하고, 언제 올지 모를 답장을 기다린다.
아마 이 시대는 이미 더 빠른 리듬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빨리 만나고, 빨리 가까워지고, 빨리 헤어지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느림'을 믿는 사람을 기다리고 싶다.
내 SNS에 3년째 올려져 있는 노을 사진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을 기다린다. 왜 내가 늘 깊은 밤에 같은 음악을 듣는지 이해해 주는 사람을 기다린다. 나를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진지하고 단단하게 나에게로 걸어오는 사람을 기다린다.
그러니까, 나는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그저 진짜로 가치 있는 연애를 하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세상을 뒤흔들 필요는 없다. 시냇물이 돌 위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맑으며 오래도록 이어지면 된다. 두 사람이 외로움 때문에 가까워지지도 않고, 새로움이 사라졌다고 서둘러 떠나지도 않으며, 긴 시간 동안 조금씩 서로를 읽어가고 받아주는 관계.
그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나는 차라리 내 섬을 지키며 있겠다.
다가오는 걸 거부하는 것도, 일부러 까칠하게 굴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속도를 늦추고, 등대를 제대로 확인한 끝에 정박하기로 결심하는 배 한 척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2026년의 61번째 날을 기록하며
친구가 물었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연애를 안 하냐고.
나는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답이 없어서가 아니다. 답이 너무 많아서다. 마치 먼지 쌓인 헌책처럼, 조금만 넘겨도 과거가 펄펄 흩날려 내려와 어느 페이지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늘 인연에 맡긴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믿지 않는다.
모든 게 효율을 중시하는 이 시대에 '인연에 맡긴다'는 말은 대충 둘러대는 말처럼, 도피처럼, 또 겁쟁이가 체면치레하는 핑계처럼 들린다. 하지만 나는 감정을 기대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저 외로움을 벗어나려고 급하게 관계를 시작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나는 늘 생각한다. 사랑은 빈자리를 채우는 비상등이 아니라, 긴 밤을 지나는 동안 저절로 켜지는 등불이어야 한다고. 눈부실 필요도, 거창할 필요도 없다. 그냥 서로의 진짜 모습과, 쉽게 꺼내지 못하는 속마음까지 비춰줄 만큼 따뜻하면 된다.
어떤 이들은 내가 너무 이상주의적이라며, 사랑을 지나치게 신성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완벽한 사람을 바란 적이 없다. 그저 진실된 이해를 얻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반복해서 듣는 그 노래가 단지 멜로디가 좋아서가 아니라, 몇 년 전 어느 여름날 비 속에서 들었던 곡이란 걸. 또 누군가가 궁금해해 줬으면 좋겠다. 내가 왜 항상 같은 색 펜으로 글을 쓰는지, 책장의 세 번째 칸을 왜 항상 비워두는지, 바다를 볼 때마다 왜 갑자기 말문을 닫는지.
이런 사소한 것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온전한 나를 이루는 조각들이다.
나는 사귀기 어려운 사람이 아니다. 다만 너무 자세히 기억하고, 너무 오래 기억할 뿐이다.
내 마음은 온통 메모로 가득한 헌책과 같다. 누군가가 표지만 훑어보고선 '그런 이야기는 이미 봤다'고 단정 짓지 않고, 천천히 읽어 내려가길 기다리는 사람이 필요하다.
과거에 남은 상처도 분명히 아직 있다. 피부 깊숙이 박힌 가시처럼, 평소에는 소리 없이 있다가 어느 비 오는 날이면 은근히 욱신거린다. 누군가 나를 구원해주길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이 상처를 봤을 때, 짜증 내며 왜 시원하게 못 넘기냐고 묻지만 않아주길 바란다.
나는 때때로 시원하게 사랑하고 깔끔하게 떠나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내 연애관은 손편지만큼 올드하다. 편지지를 펼치고, 잉크를 제대로 찍어 한 문장 한 문장을 여러 번 곱씹는다. 보낸 후에는 마음 졸이며 기대하고, 언제 올지 모를 답장을 기다린다.
아마 이 시대는 이미 더 빠른 리듬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빨리 만나고, 빨리 가까워지고, 빨리 헤어지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느림'을 믿는 사람을 기다리고 싶다.
내 SNS에 3년째 올려져 있는 노을 사진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을 기다린다. 왜 내가 늘 깊은 밤에 같은 음악을 듣는지 이해해 주는 사람을 기다린다. 나를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진지하고 단단하게 나에게로 걸어오는 사람을 기다린다.
그러니까, 나는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그저 진짜로 가치 있는 연애를 하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세상을 뒤흔들 필요는 없다. 시냇물이 돌 위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맑으며 오래도록 이어지면 된다. 두 사람이 외로움 때문에 가까워지지도 않고, 새로움이 사라졌다고 서둘러 떠나지도 않으며, 긴 시간 동안 조금씩 서로를 읽어가고 받아주는 관계.
그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나는 차라리 내 섬을 지키며 있겠다.
다가오는 걸 거부하는 것도, 일부러 까칠하게 굴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속도를 늦추고, 등대를 제대로 확인한 끝에 정박하기로 결심하는 배 한 척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